문화재와 전각

문화재 안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109호)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제109호)

석굴 사원은 자연 동굴이나 암벽에 굴을 파서 그 안에 불상을 안치하거나 벽면에 불상을 새겨서 만든 절이다. 인도에서 시작하여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하여졌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거대한 천연절벽 자연동굴안에 삼존불을 모셨는데 석굴 입구는 둥근 모양이고, 내부 바닥은 네모지게 반듯한 모양으로 평평하다. 천장은 활등이나 반달처럼 굽은 모양이다. 석굴 안에는 중앙에 아마타불,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을 벽면에 붙여서 모셔 놓았다.

아마타불은 사각형으로 만든 받침대 위에 두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하게 앉은 모습이다. 양쪽 귀는 길고, 묵은 짧고 곧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뒤쪽 바위 면에는 부처의 정수리와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장화한 광배가 장식 무늬 없이 새겨져 있다. 관세음보살의 머리 뒤에 있는 광배에는 넝쿨무늬와 불꽃무늬가 있어 새로 수용된 당나라의 형식이 보인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삼국 시대 조각이 통일 신라 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그리고 자연동굴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삭굴 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때 경주 석굴암에 이은 두 번째 석굴암이라는 의미로 제2석굴암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문화재 명칭에 따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로 불린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유형문화재258호)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유형문화재258호)

군위 삼존 석굴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삼존 석불이 모셔진 이후인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유행하던 신라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상의 변천과 신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통견식의 법의를 입고 있다. 양쪽 어깨에 법의가 조금씩 걸쳐져 있어 앞가슴이 넓게 드러나 있다. 두 팔을 타고 내려온 옷 주름은 두 무릎에서 다시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다. 수인(手印)은 지권인이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두 뺨은 풍만하며 귀가 길게 늘어져 있고, 머리는 소라 껍데기처럼 말린 모양이며, 육계는 편평하다. 원래는 파괴된 대좌와 함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0m 북쪽에 있었으나, 1990년 대웅전을 늘려 지으며 대좌와 불단을 새로 만들고 옮겼다.

모전석탑(문화재자료241호)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모전석탑(문화재자료241호)

1층 기단(基壇) 위에 1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특이한 형태로, 전탑(塼塔:흙벽돌로 쌓아만든 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기단은 네 면마다 모서리에 2기, 그리고 그 사이에 3기 등 5기씩의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20여 단의 일정치 않은 돌을 포개어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전탑에서와 같이 아래·윗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단을 쌓아 점차 줄어들게 하였다. 지붕돌 한가운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을 다시 쌓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비교적 탑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각 안내

비로전(毘盧殿)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비로전(대웅전)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을 비로전(毘盧殿)이라고 한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범어 비로사나(Vairocana), 비로절나, 페로자나, 로사나라고 하며 변일체(遍一切處), 광명변조(光明遍照)라 한다. 이는 부처님의 진신을 나타내는 칭호로서 부처님의 신광지광(身光智光)이 이사무애(理事無碍)의 법계에 두루 비치는 원명(圓明) 한 것을 의미한다.

여기의 비로전은 신라 제19대 눌지왕 대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그 후 임진왜란 당시 전화로 인하여 소실되어 오랜 세월을 폐허에 묻혀 오던 것을 1985년 혜조 법등스님이 제3대 주지로 부임하여 중창대업을 발원, 5년 동안 공정을 거쳐 1990년 5월에 준공하였다.

템플스테이 연수원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템플스테이 연수원

연수원 설립의 본 취지는 전통문화원으로 한국불교의 전법을 위한 도량이었지만 30여년동안 그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였다.

제4대 주지 홍관스님이 부임하고 혜아스님을 부주지 및 연수원장으로 임명하면서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는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힐링과 위안을 받고자 하는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법성루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법성루

불교 사물(범종, 법고, 운판, 목어)을 모신 전각으로 본 암(庵)에는 범종만을 모시고 있다.

새벽 예불에는 28번, 저녁 예불에는 33번의 종을 치는데 ‘지옥 중생이 고통을 여의고 삼악도를 벗어나 정각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간절한 원(願)이 담겨있다.

광명선원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광명선원

광명선원이 개원 당시에는 전국에서 4번째 규모로 전문수도원이 전무하였으며, 1985년부터 4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당시 동화사의 선원폐쇄로 사실상 승려배출기관이 없었다.

이 때문에 팔공산 지역 선원의 재개원은 불교계의 소망이었고 광명선원의 개원은 단순한 단위사찰의 불사가 아니라 지역불교계의 맥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교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광명선원은 2백명의 스님이 수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규모로는 문경 봉암사, 경주 불국사, 전남 송광사 다음으로 큰 것이다.

삼성각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삼성각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모신 전각으로 팔공산 정상을 마주하고 있는 산세가 잘 어우러진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신이나 칠성은 불교 전래 이전부터 있던 토속신앙으로 불교가 이를 흡수했다.

광명보탑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광명보탑

광명보탑이라 함은 미타여래(彌陀如來),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 즉 광명여래(光明如來)를 표방하여 여래광명보탑이라 하였다.

부도탑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부도탑

부도(浮屠)는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된 묘탑(墓塔) 형태의 조형물로 승려 무덤이라 하여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부도는 대부분 석재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석조 부도라 이르기도 하고, 겉모습으로 인해 부도탑(浮屠塔) 또는 석종(石鐘)이라고도 불린다. 일반적으로 부도에는 탑비가 건립되어 부도 주인의 생애 및 행적 등을 밝힐 수 있으며, 당시의 사회상·문화상·조각 양식 등을 연구하는 귀한 자료가 된다.

종무소

팔공산 석굴암(제2석굴암) 종무소

사찰의 대소불사 등 제반 종무행정을 처리하는 사무실이다.